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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7> 출장재판 덕에 추방 모면한 청년

법원이 출장해서 재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가 사고에 따른 부상이나 질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관계로 법원에 출정할 수 없을 경우 해당 피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재판부가 출장을 나가 재판을 한다. 이럴 경우 재판에 필요한 모든 인원이 당연히 입회해야 하므로 판사를 비롯해 검사ㆍ변호사ㆍ속기사 그리고 필요한 경우 통역관까지 동반하는 큰 집단이 병원의 입원실로 찾아가 법원에서 하는 것과 같은 절차로 재판을 진행한다. 지난 2009년의 일이다. 절도 혐의로 체포된 한인 청년이 범행 중 발생한 사고 때문에 중상을 입어 입원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됐다. 이 청년은 절도할 목적으로 한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4층에 침입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불법체류자였던 이 청년은 그러나 법원의 출장재판 덕분에 추방을 모면한 사례다. 청년이 체포된 뒤 변호사에게 털어 놓은 범행 당시의 상황에 따르면 청년이 돈을 찾느라 뒤지고 있는 와중에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꼼짝없이 들키게 된 청년은 도망갈 길이 없어 베란다를 통해 아래로 뛰어 내렸는데, 2층 높이의 주차장 건물 지붕 위에 떨어져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양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됐고, 경찰의 감독 아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청년은 병실로 찾아 온 재판부에 "아파트의 주인이 많은 현금을 집 안에 쌓아두고 있을 것으로 알고 이를 훔치려고 침입했고, 미국의 거주 신분은 불법체류자"라고 자백했다. 판사는 이 청년이 절도 현행범이므로 많은 금액의 보석금을 책정했고, 보석금을 지불하지 못한 피의자는 부상 덕분으로 형무소가 아닌 병원에서 다음 재판을 기다리게 됐다. 만약 이 청년이 부상을 입지 않아 교도소에 수감됐다면, 이민국의 신원조회를 통해 불법 체류 신분이 들통나고, 재판이 끝나면 이민국으로 신병이 넘어가게 돼 있었다. 이 청년의 부상이 워낙 심해서 병원에 입원한지 무려 6개월이 지나서야 휠체어에 앉아 처음으로 법원에 출정하게 됐다. 처음 출정한 재판에서 검찰은 변호사도 깜짝 놀라는 구형을 했다. 피의자의 심한 부상을 참작한 것인지 검찰은 변호사가 형량협상 과정에서 요구했던 경범죄 처벌보다 더 낮은 ACD라는 6개월 기한부 기소유예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청년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추방을 모면함은 물론 엄격한 형사법적 처벌까지도 피하게 된 것이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2-08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6> 검찰의 형량 협상

형사사건 가운데 그리 심각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에게 검찰은 관례적으로 형량 협상(Plea Bargain)을 시도한다. 이 협상에 동의하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재판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피의자 입장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협상을 거부하고 정식 재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무조건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는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 대신 기소는 피할 수도 있다. 일부 한인들의 사례를 보며 어떤 결정이 현명한 선택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한 40대 초반의 남성이 남의 아파트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가택침입 절도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불법체류 신분이 이민국에 알려져 신병인수 통보가 첨부됐다. 피의자의 설명으로는 친구의 집으로 잘못 알고 들어갔다는 것이었지만, 친구의 집에 굳이 왜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했느냐는 질문에는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찰은 이 남성에게 3급 중절도 혐의를 시인하면 2년 징역형을 구형 할 것이고,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배심으로 사건을 보내 2급 중절도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통보했다. 2급 중절도는 유죄로 판결나면 최소 3년 6개월에서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죄목이다. 그러나 이 남성은 검찰의 형량 협상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배심을 거쳐 정식 재판을 받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검찰은 2년 징역형 대신 1년으로 구형하겠다고 더 좋은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이 남성은 끝까지 재판을 요구했다. 결국 이 남성은 대배심에서 2급 중절도 혐의가 인정돼 기소됐고, 형을 마친 후 강제추방 조치까지 받게 됐다. 또 다른 사례는 술집에서 폭행을 한 혐의로 체포돼 온 2명의 조선족 동포 청년 이야기다. 폭행 사건은 검찰이 피해자의 진술서를 제시하지 못하면 증거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검찰은 폭행 사건의 경우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협상으로 재판을 끝내기를 시도한다. 이 두 청년의 사건도 처음엔 피해자의 진술서가 없어 검찰이 폭행죄 대신 형사범죄가 되지 않는 규정 위반급 혐의로 처리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조건에 유죄를 시인하면 15일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봉사활동 기간이 너무 길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맞았다고 고발한 피해자가 병원의 치료 기록과 피해자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하고 말았다. 증거를 손에 쥔 검찰은 15일간의 봉사활동 조건을 철회하고 경찰이 입건할때 적용한 중폭행 혐의로 대배심에 보내 기소하겠다고 법원에 통고하고 말았다. 불법체류자였던 두 청년은 결국 15일 봉사보다 엄한 처벌을 받았고, 추방재판에 회부되고 말았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1-26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5>오해받는 우리말 표현

몇 년 전 한인 인터넷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하소연이 실렸다. "…메릴랜드에 살고 있는 30살의 남자입니다. …작년에 8살짜리 아들을 혼내는 과정에서 '또 거짓말하면 너 죽고 나죽어'라고 말했는데,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가정상담에서 그 말을 직역해 말했습니다. …그 날 이후 경찰이 찾아와 저를 집에서 쫓아 냈습니다." 아마 그 지역 가정법원이 '죽인다'는 말을 한 이 남자를 위험 인물로 간주하고 가족과의 접촉을 금지 조치하는 명령을 내린 모양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흔히 쓰고 있는 표현인 '죽인다'는 말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kill'이라는 뜻으로 전달돼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몇 해 전 내가 통역을 맡은 한 형사 재판과정에서 한 증인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어서 이를 'kill' 이라고 한다면 분명 오해를 불러 올 소지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말을 피의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진의에 가장 가깝게 통역할 수 있을까 하는 난감한 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통역관의 역할은 표현하는 그대로를 통역해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표현으로 통역할 수는 없다. 또 한국인의 언어 풍습 상으로 '혼내준다' 또는 '그냥 두지 않겠다' 정도의 표현이라고 설명을 붙이는 것도 원칙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엄청난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통역관은 판사에게 양해를 얻어 이런 설명을 더 부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이해를 얻어낸 일이 있었다. 또 한가지 다른 예로는 우리의 젊은층 부부 사이에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한 당사자가 이런 식으로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면 이를 직역해서 'brother'로 번역해서는 말이 안된다. 단어로서의 번역은 'brother'이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영어의 'honey' 정도의 의미로 남편을 불렀다고 통역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일단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를 번역하되 그 단어가 표현 하고자 하는 뜻은 '이런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오해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이 피고 측의 진술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당연히 이 말을 한 사람의 변호인이 그 분명한 의사표시가 무엇이었는지 재판부를 설득해야 한다. 한 번은 남부 지역에 살던 어느 한인 여인이 집에 혼자 있던 아이가 쓰러지는 장농에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슬픔에 쌓인 엄마가 넋두리로 '내가 너를 죽였다'하며 몸부림치며 울었다. 이 여인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경찰이 이 여인을 살인 혐의로 체포한 사건도 있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1-1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4> 단기 방문자의 형사 사건

한미 양국 간 비자면제 협정이 시행된 뒤로 무비자 방문자들이 관련된 형사 사건에 새로운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단 형사 사건에 입건되면 초기에 바로 종결되지 않는 이상 재판은 적어도 몇 개월 이상의 시일이 소요된다. 때문에 무비자 또는 단기 체류 허가로 있는 사람은 체류기간 안에 재판을 종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재판 때문에 체류 기한을 넘기면 이민법을 어기는 불법체류가 되고, 재판을 끝내지 않고 미국을 떠나면 법정 기일에 법원에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체포영장이 발부된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사건이 아무리 미미한 혐의라도 이민국을 포함한 미국의 전 사법기관에 통보되기 때문에 후일 미국 비자를 신청할 경우 거부될 수도 있고, 입국하더라도 공항에서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교통법규 위반 혐의로 티켓을 받은 경우라도 그것이 벌금형이 아닐 경우 법원에 나와야 하고,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이 발부된다. 최근 한 단기 연수 유학생이 출입금지 시간이 지난 뒤 공원에 앉아 있다가 경찰로부터 법원에 출두해야 하는 티켓을 받았다. 그러나 이 학생에게 주어진 티켓상의 법원 출두 날짜가 체류 기간이 지난 뒤여서 문제가 됐다. 법원에 미리 출두해서 조기 재판을 받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것도 예정 심리일 보다 일주일 정도 전이라야 가능했다. 한가지 해결 방법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변호사가 해당 날짜에 대리 출석해 유죄시인을 하고 재판을 끝내는 방법 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무비자로 미국에 온 여러 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체류기간이 거의 임박할 무렵에 체포됐다. 이들 역시 변호사 선임 등의 방법으로 사건을 끝낼 수는 있었으나 체류기간 때문에 5번이나 받아야 하는 교육 이수가 문제였다. 결국 풍기문란 혐의에 유죄를 시인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돼 벌금형으로 재판을 끝내는 차선의 방법으로 마무리됐다. 덕분에 후일 이들 여성들이 비자를 신청하거나 무비자 입국 절차를 위한 조회 과정에서 형사 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는 정도의 기록은 남게 된다. 결국은 문제가 될 소지는 남아 있는 셈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1-06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3>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처벌

형사 사건에서 많은 경우에 운에 따라 결과가 엇갈리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검찰의 참작에 따라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큰 처벌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리 큰 죄도 아닌데 여러 정황상 엄한 처벌을 받는 사례도 있다. 변명의 여지없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던 한 청년이 검찰의 호의로 처벌을 면한 사건이 있었다. 플러싱에 살았던 이 젊은 청년은 이웃에 사는 다른 한인 사업가가 집안에 많은 액수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집을 털기로 결심하고 어느 날 그의 아파트에 침입했다. 청년이 현금을 찾느라 온 집안을 뒤지고 있는 와중에 때마침 집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청년은 급한 마음에 4층 아파트의 창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다행히 아파트 밑 2층 높이의 주차장 건물 지붕에 떨어져 목숨은 건졌지만 양쪽 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경찰에 체포돼 병원에 실려갔다. 직업도 없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불법체류 신분의 이 청년은 조사 과정에서 신분 문제가 발각되면 추방까지 당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원으로 바로 실려 가는 통에 이민국의 신원조회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불법체류 신분도 들통나지 않았다. 부상이 심해 몇 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무려 4개월이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한참 뒤 건강을 회복한 뒤에야 법원에 출두하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찰은 이 청년의 부상을 고려한 듯 첫 재판에서 전례 없이 ACD라는 6개월 기한부 기소유예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추방도 면했고, 심지어 그동안의 병원 치료비도 모두 국가가 지불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청년처럼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냥 풀려나다시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이는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터무니없는 일로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다. 부동산 에이전트를 하고 있던 40대의 이혼남 M씨는 아는 술집 웨이트리스에게 방을 임대해 주었다가 밀린 렌트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게 됐다. 그러자 술이 취해 있던 여인은 오히려 무슨 말이냐며 소리를 지르고 남자의 국부를 발길로 차는 등 폭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히고 화가 치민 남자도 여인의 뺨을 한 대 때렸다. 겁이 난 여인은 2층인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으로 창문에 매달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결국 경찰에 의해 안전하게 내려 온 여인은 그러나 영어가 짧아 경찰관에게 자세한 정황 설명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 남자가 죽인다고 하면서 폭행을 하기에 도망가려고 뛰어내리는 중이었다"고 말해 버렸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여인의 말만 듣고 이 남자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해버렸다. 혐의가 큰 만큼 그는 구치소에서 6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검찰이 결국 사건 내막을 알게 되긴 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검찰은 살인 미수 대신 경범 혐의의 폭행으로 낮춰 재판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M씨는 이미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형무소 신세를 진 것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30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2> 가족들도 버린 정신장애 범죄 한인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한인들 가운데도 꽤 있다는 것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50대 한인 주부가 이웃과 말다툼을 하다가 쇠꼬챙이로 위협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었다. 지문조회 결과 이 여인은 같은 혐의로 플로리다주에서도 입건된 적이 있었지만 재판에 나가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법원에서는 500달러의 보석금을 책정했으나 여인은 돈을 낼 형편도 안 됐고, 남편이나 다른 이웃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검찰은 여인의 사정을 감안해 소추를 포기하고 기소유예로 풀어주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이듬해 또 같은 혐의로 체포됐다. 이번에는 이 여인을 담당한 변호사가 정신감정을 의뢰했고, 검사 결과 여인은 심각한 정신장애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은 여인이 형무소에 갇혀 있는 상황을 오히려 안도하고 있었고,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중절도로 잡혀 온 20대 후반의 한 여인도 정신질환 환자였다. 중범으로 기소되기 직전, 이 여성의 변호사가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검사 결과 병원 측은 이 여인이 정상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여인 역시 형무소와 병원에서 지내는 8개월동안 가족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여성은 정신장애 상황이 감안돼 풀려났으나, 이듬해 다른 혐의로 또 체포돼 법원에 서게 됐다. 변호사는 이 여인이 예전에 정신장애 판정으로 풀려난 일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결국 이 여인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이 두 여인은 가족들에게서조차 내버려진 상태였다. 가족들의 버림과 무관심 때문에 두 여인은 형사 사건에 연루됐고,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형무소와 정신병원을 오가는 안타까운 사연이 돼 버렸다. 가족 한 사람의 정신 질환은 가족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는 의식이 한인사회에 뿌리내리길 기원해 본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23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0> 운이 엇갈린 한인들

미국의 사법 체계에서는 법원의 명령을 위반하거나 재범의 경우 아주 엄격하게 처벌한다. 경범의 경우 벌금형이나 봉사활동 명령 같은 것으로 간단히 끝나게 마련이지만, 일정 기간 안에 다시 범법행위로 입건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또한 법원의 명령이다. 음주운전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고 벌금형과 음주운전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도록 선고 받은 청년이 있었다. 3개월 뒤 정해진 법정 기일에 벌금과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는 증명을 갖고 출두해야 했다. 그러나 청년은 다음 재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그 뒤로 여러 차례 기회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빈손으로 법정에 나왔다. 판사는 이유를 물었으나 청년은 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판사는 실형으로 선고를 바꾸고 현장에서 수감시켜버렸다. 플러싱에 사는 50대의 김모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좀도둑 혐의로 1년에 서너 번 정도는 빠짐없이 잡혀 들어오는 도벽이 있었다. 이 여성이 어느날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돼 체포됐다. 이 여성에겐 7일간의 봉사활동 사역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역 임무를 마치지 않았고, 6개월 뒤 또 다시 같은 혐의로 체포돼 들어왔다. 지문 조회 결과 그 동안 롱아일랜드 서폭카운티에서도 역시 절도혐의로 체포돼 이미 3개월의 징역살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는 봉사활동을 끝내지 않은 명령위반이 추가돼 30일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 여성은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에도 도벽때문에 또 체포됐고, 법원에 서게 됐다. 불과 2년 사이에 4번이나 좀도둑 혐의로 체포된 경력 때문에 담당 변호사도 정신감정 신청을 심각히 고려했다. 정신감정이 신청되면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병동에서 감정을 받는데 한번 들어갔다 하면 1년을 넘기기가 일쑤여서 검사의 60일 징역형 구형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판단에 이를 받아들이고 끝을 냈다. 1년 이내에 재범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즉 법원의 명령을 위반한 이유로 이번에는 60일의 징역형이 선고된 것이었다. 후일 알게 되었지만 형무소에서 이 여인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발각돼 복역 후 추방재판에 회부돼 결국 한국으로 추방됐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9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4> 고모부를 무고한 조기 유학생

백모씨는 3년 전 9학년생의 딸이 있는 여인과 재혼했다. 이 여인은 조카도 데리고 있었다. 그녀의 딸은 착실해서 공부도 잘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한국에서 조기유학으로 와 있는 조카딸이 문제가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외출이 잦아지고 학교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카딸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반항의 강도만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생각다 못한 백씨는 부인과 의논 끝에 한국에 있는 처남에게 이를 알렸고, 처남은 곧 아이를 한국으로 귀국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아이가 아마 부모로부터 꽤나 심한 꾸중을 들은 모양이었다. 토라져서 고모부와는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하루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어 볼 작정으로 일을 마치고 오는 시간에 집에서 기다려달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올 때 조카가 막 집을 나서려고 하길래 붙들었다. 아이는 강하게 저항하면서 집을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강제로 팔을 끌어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백씨뿐만이 아니라 부인과 사촌인 딸아이까지 온 가족이 아이를 타일렀다. 그러나 다음날 아이는 아무런 연락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록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나흘째 되는 날 백씨는 경찰에 미아신고를 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조카딸 문제로 물어볼 일이 있으니 경찰서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백씨는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경찰은 조카딸이 자신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고, 자신을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집을 나가기 전날 팔을 끌고 집으로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아이의 몸에 여기저기 손을 대고 더듬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경찰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자신에게 꾸중만 하는 고모부에게 몹시 감정이 상한 조카가 보복을 할 참으로 경찰에 가서 엉뚱한 고발을 해놓고는 행방을 감추어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팔과 몸에 몇 군데 약간의 멍 자국이 있었는데 모두 고모부가 강제로 자신을 범하려다가 생긴 멍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검사도 결국은 고발인의 증언을 받기위해 아이를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재판이 무려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 없이 연기되고 있는 와중에 한국에서 처남이 왔다. 그때서야 말인 즉 아이는 지금 한국에 와 자신이 보호하고 있으며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딸의 잘못을 매제에게 사죄하고 검찰에 가서 사건을 취하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검사를 만났다. 아이의 보복성 무고라는 아버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본인의 진술이 아니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백씨는 사건이 기각될 때까지 무려 10개월 가까이 시달려야 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3> 타협의 조화를 모르는 한국인

뉴욕주에는 경미한 분쟁사건 등을 법원의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재인의 입회 하에 분쟁 당사자 간의 양보를 얻어내고 합의를 시켜서 사건을 해결하게 하는 중재제도가 있다. 맨해튼에 있는 중재재판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40대 한인 여성이 사건 당사자로 나왔다. 이 사람은 한국의 모 대학 음악 조교수로 있다가 이곳 컬럼비아 대학원에 유학 와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사건이란 대학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흑인 학생과 생긴 언쟁이 확대된 사건이었다. 꽤 심한 다툼 후, 양쪽 모두 서로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학교 당국과 경찰에 서로 상대방을 고발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국인 학생이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는데 룸메이트인 흑인 학생이 그 음식 냄새를 견딜 수 없다고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데서 시작됐다. 한국 학생의 주장은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생 감자를 삶은 것인데 무슨 이상한 한국음식을 하는 걸로 지레짐작하고서는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난다고 소동을 피우며 인종차별적인 모함을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한국인 학생의 불만은 이 흑인 학생이 거의 매일같이 밤 12시가 넘도록 전화에 매달려 있어 공부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수면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몇 번에 걸친 말다툼 끝에 서로가 학교 당국에 불만을 토로해 결국 각자 다른 방으로 갈라지도록 조치됐던 터였다. 그런데도 가끔 엘리베이터 속에서 마주치면 인사는커녕 각자 싫은 소리로 중얼거린 모양인데 흑인 학생이야 영어로 지껄이는 것이니까 이 쪽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한국인 학생은 영어에다 한국말로 중얼거리니까 흑인 학생이 알아들을 수는 없고 그 인상으로 보아 무언가 나쁜 소리를 하는 것으로 짐작, 괴롭히고 성가시게 한다고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학교 당국이나 경찰로서도 이 정도 일을 가지고 입건할 수도 없어 이 사건을 중재소로 보낸 것이다. 양쪽의 불만을 들은 중재인은 합의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앞으로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기로 하며, 둘째 엘리베이터 등 기타 공공장소에서 만나게 돼 부득이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반드시 영어로만 할 것 등 간단한 것이었다. 첫째 조건은 서로가 원하는 것이어서 즉각 받아들였다. 그런데 둘째 조건에서도 흑인 학생은 당연히 오케이 했으나 한국인 학생은 이를 거절했다. 자신은 그 전에도 한국말로 흑인 학생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도 한국말로 괴롭혔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언제나 흑인 학생에게는 영어로만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 영어로만 말하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면 과거에는 한국말로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명분상 서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재인은 합의서에는 과거에 한국어를 했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만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본인 마음이지 아무 곳에도 그것을 인정하는 부분은 없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한국인 학생은 전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서명을 받는 데는 실패했고 첫째 조건만 써 있는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중재는 끝나고 말았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22> 음주운전으로 낭패 본 한인 2제

사고장소, 체포 기억도 없이 만취 고급 캐딜락 승용차로 플러싱에서 카서비스 기사를 하고 있는 박씨. 크리스마스날 추운 겨울 밤을 꼬박 세운 박씨가 일을 마친 새벽녘에 친구와 어울려 가까운 식당에서 피로도 풀 겸 한잔 걸치게 됐다. 새벽 빈속에 마시는 소주는 첫 잔에 취기가 돌았다. 이런 저런 인생이야기 끝에 박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취하게 됐다. 운전대에 앉았던 기억 다음으로는 경찰서의 유치장에 잡혀있는 신세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경찰의 혈중 알코올 농도검사 결과는 0.20%로 뉴욕주 음주운전 법정 허용치인 0.08%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러니 소주 한 병을 마셨다는 것은 자신의 어렴풋한 기억일 뿐 실제로는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법원에 넘어온 경찰조서에 의하면, 신호대기 중에 있는 차를 술이 취한 박씨가 보지 못하고 뒤에서 들이박아 추돌사고를 낸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박씨는 너무 술에 취한 나머지 운전대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손님을 태우고 고속도로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동네 길에서 이 정도의 접촉사고로 경찰에 잡힌 것은 하늘에 감사해야 일이다. 얼마나 술이 취했던지 박씨는 법원까지 와서도 자신이 어디서 잡혀 왔는지, 그리고 어느 경찰서를 통해 이송돼 왔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차는 당연히 압류될 것이고 운전면허증도 취소될 터이므로 이제는 도리 없이 직업을 바꿀 수 밖에 없게 됐다. 사람 다치는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경찰에 잡힌 것은 오히려 이 사람을 살려준 천운인 셈이다. 중앙 분리대를 차선으로 착각 질주 또 한 청년은 술에 취한 채로 큰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달리다 잡혀왔다. 이 청년은 야채가게의 트럭 운전사였다. 새벽에 출근하는 청년은 사고 전날 저녁 한 친구의 귀국 송별파티에 참석했다. 초저녁에 적당한 양의 술을 마시고 잠시 눈을 부치면 출근에 문제가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술자리가 벌어지고 나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얼마나 늦게까지 마셨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청년은 만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뒤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야채 도매상이 있는 브롱스로 가는 길에는 그렌드콩코스라는 대로가 있는데 중간 분리대에 2m 정도 넓이의 화단이 꾸며져 있는 넓은 길이다. 술에 취한 청년이 이 도로를 달리다 넓은 중간 분리대를 또 하나의 차선으로 착각했다. 한동안 중앙분리대를 신나게 달린 모양이었다. 결국 경찰의 추격 끝에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체포됐다. 그동안 어디를 운전하고 돌아다녔는지 트럭의 지붕이 모두 날아가고 없었다. 아마 트럭 통행이 금지된 파크웨이를 달린 모양이었다. 법원에 면회 와 있던 야채가게 주인이 청년의 보석금을 지불해 그나마 유치장 생활은 면할 수 있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1> 내 이름이 뭐지요?

형사법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벌금을 내려고 줄을 서 있던 아가씨가 지나가는 나를 잡고 "아저씨! 오늘 내 이름이 뭐지요"하고 묻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게 묻다니…. 마사지 팔러에서 일하는 아가씨인데 매춘 혐의로 잡혀서 벌금형을 받은 것이다. 여러 사건이 겹쳐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잡힐 때마다 다른 가명을 썼기 때문에 오늘 벌금형으로 끝난 사건이 그 중 어느 것인지 헷갈린 모양이었다. 가짜 이름을 쓴다고 해도 지문조회 때문에 본인의 신분이 감추어질 수는 없다. 오히려 불편만 더 보태게 되고 때로는 아주 심한 불이익을 당할 때도 있다. 보석금이 높게 책정된다든지 혹은 후일 서류상으로 증명을 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몇 해 전 폭행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는 한 청년은 영주권 신청 중에 이민국의 요청으로 그 때 사건의 재판 결과에 관한 증명을 발급받으러 왔는데 당시 가짜 이름을 썼기 때문에 본명으로 증명을 발급받을 방법이 없어 쩔쩔맨 일도 있었다. 이렇듯 법원에서는 이름과 관련해 웃지 못할 문제들이 종종 생긴다. 그 중 한국 이름의 영문표기 때문에 문제가 자주 생긴다. 우리 이름을 영문 알파벳으로 쓸 때 딱히 정확한 공식이나 규칙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라도 여러 가지로 쓸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정종진'이라는 이름을 써보자. 'Chong Chin Chung' 또는 'Jong J. Jung' 등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는데 어느 쪽을 쓰던지 서양 사람들이 정확하게 우리 이름을 그대로는 발음할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뉴욕의 법원에서는 히스패닉계 사람들의 사건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법원 직원들은 거의 모든 외국 이름을 히스패닉식으로 읽는 습관이 돼 있다. 따라서 위의 'Jong J. Jung'은 필경 '용 제이 융'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많다. 이렇다 보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노대식'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유독 자신의 이름을 'Dai Sick No'라고 썼다. 법원 직원이 이 사람의 차례가 돼 이름을 부르다 말고 폭소를 터트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Dai는 '다이'라 읽기 때문에 영어로 죽는다(die)는 소리로 돼버렸고, '식'하면 아프다(sick)는 뜻이니 이런 악명이 어디 있겠는가. 죽지도 아프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작명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요상한 이름이 되고 말았다. 특히 '식'자를 왜 sick으로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영어의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썼을 것 같다. 그리고 '석'씨 성이나 '석'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suck이라고 쓰는 것도 피해야 할 이름 중의 하나다. 당신의 이름은 이곳 사람들이 무어라고 부르는지 관심을 가지고 되새겨볼 일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0>표독한 외국인 며느리

올해 마흔한 살인 정씨는 10대인 아들과 역시 10대인 그의 아들과 동거하는 여자친구인 히스패닉 여인, 그리고 이제 한 살이 가까워오는 그들 사이에서 난 손자와 모두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손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늘 주의를 기울이고 지켜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날은 며느리가 새로 사 온 신발을 신겨놓아서 걸음마 연습이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정씨가 보기에는 아이가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걸음이 더 어렵고 또 아이가 혹시 넘어져 다칠세라 아이의 신발을 벗겨버렸다. 아이 어미인 히스패닉 여자는 제 딴에는 아이를 예쁘게 하느라고 신발을 신긴 것이고, 또 신발을 신은 채로 걸음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신발을 신겨놓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신발을 벗겨버렸다고 무척 화를 내면서 신발을 다시 신겨놓았다. 영어도 스패니시도 알아듣지 못하는 정씨는 그 여인이 무슨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지 알지 못하고 아이가 신발을 벗고 걷는 것이 훨씬 잘 걷는다는 것만 생각하고 다시 신발을 벗겨놓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아이의 신발이 다시 벗겨진 것을 본 여인은 이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손찌검을 할 것 같이 너무 악을 쓰고 덤비는지라 놀란 정씨는 여인을 달랠 생각으로 길길이 뛰는 여인의 팔을 잡고 앉히려고 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더 큰 악을 쓰면서 긴 손톱으로 정씨의 목덜미와 얼굴을 마구 할퀴면서 계속 악을 쓰는 것이었다. 젊은 여인이 얼마나 악을 쓰고 야단을 쳤는지 이웃들이 모여들었고 큰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안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 금방 경찰이 달려왔다. 여인이 경찰에게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앞서 보다 악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간단히 설명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설명을 다 듣고 난 경찰이 정씨에게 동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정씨는 경찰이 요구하는 대로 경찰서까지 연행되었고 알지도 못하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도무지 왜 자신이 구속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중앙구치소에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침에야 법원으로 보내졌다. 이때 처음으로 통역을 동반한 변호사와의 접견을 통하여 정씨는 비로소 어떤 혐의로 구속되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여인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폭행을 했고, 또 아기에게 위험스러운 행동을 하여 아동학대 및 위해 행위를 저질러 입건되었다는 것이다. 정씨는 당연히 재판정에서 자신의 폭행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이 며느리인 그 여인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으니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정씨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단지 정씨가 기대하는 것은 설사 그 여인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더라도 아들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사건을 취하해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었다. 미국의 형사사건 절차가 고발인이 고발을 취하한다 해서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씨는 몰랐고, 오히려 그 여인은 접근금지 명령 때문에 꼴 보기 싫은 시아버지를 안보게 되어서 여간 신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경찰에 가서 취하할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할 리도 만무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9>남의 ID로 택시 영업한 운전사

50대의 한국인 남자가 법원이 발행한 체포영장에 의해 법원에 연행돼 왔다. 폭행혐의로 체포돼 입건된 사건이 있었는데 재판이 있는 날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행된 것이었다. 판사 앞에 서게 된 이 사람은 자신이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적도 없거니와 법원에 나와 재판을 받을 일도 없었다고 완강히 부인하는 것이었다. 검찰이 사건기록을 찾아 사진조회를 하게 됐는데, 분명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는데 이름과 생년월일은 이 사람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폭행사건 때의 전과조회 서류에 의하면 지난 2년 동안 벌써 여러 번 교통관련 위반혐의로 체포된 기록이 있고 그때마다 유죄를 시인하고 벌금을 문 기록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사건들이 지문조회에 의해서 밝혀졌다는 것은 같은 사람에 의해서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바로 서류에 첨부돼 있는 사진 속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이 사람과 같은 것은 동명이인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신분을 도용한 것이었다. 어찌됐건 이날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사진조회로 확인됐으므로 법원은 바로 그를 석방했다. 이 사람은 몇 해 전에 운전면허증을 분실한 적이 있는데 필경 누군가 이 면허증을 이용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서류에 나타난 주소를 보고 집을 찾아갔다. 이름을 대고 이 집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자신과 같은 이름의 사람으로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찾아온 사유를 들은 이 사람은 의외로 고분고분히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불법체류자로 지금 카서비스, 그러니까 자가용으로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가짜 운전면허증을 거래한다는 브로커를 알게 됐는데 그들을 통해서 구한 남의 면허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교통법규 위반사건으로 티켓을 받을 때마다 그대로 유죄를 시인하고 처리해 왔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남의 면허증을 가지고 더구나 영업까지 하고 있다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 이름으로 폭행사건까지 일으키고 법원에 출두하지 않아 영장이 발부돼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모든 범법사건을 깨끗이 처리하지 않으면 이 이름의 본인은 예상할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게 돼 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진짜 본인은 하는 수 없이 검찰에 사실을 신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이름을 도용한 이 사람이 입건되는 날에는, 남의 이름으로 법원의 재판까지 받은 경력 등으로 징역실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8>내 집 앞에 세운 남의 차

퀀즈 리틀넥에 개인주택을 갖고 있는 한인 여성 유모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데려다 놓고 조기유학을 시키는 소위 기러기 가족 부인이다. 한국에서 남편이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어 중산층에 속하는 생활을 해 온 유씨는 몇 해 전부터 미국과 한국을 거의 반반 정도로 살고 있다. 유씨가 살고 있는 집의 길 건너에는 한 유태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식구가 여럿이라 무려 5대나 되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유씨는 그들이 갖고 있는 차가 많아 늘 이웃의 주차자리까지 모두 차지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유씨는 자신의 집 앞에는 한국식으로 본인 차 외에 다른 사람은 주차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앞집 남자가 하필 유씨의 집 앞에다가 차를 세워두는 바람에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자신의 집 앞에 주차하지 말라고 분명히 일러두었는데도 주차한 이 남자에게 본때를 보여야 되겠다고 생각한 유씨는 집에서 쇠붙이 조각을 들고 나와 주차해 놓은 남의 차를 길게 몇 번 그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다음 경찰이 찾아왔다. 재산손괴혐의의 형사법으로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재산 피해액이 250달러가 넘으므로 중범죄(Felony)로 입건됐다. 자신의 집 앞은 본인만이 주차할 수 있다고 믿어 온 한국식 생각에 수갑을 차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재판에 회부된 유씨는 미국생활의 초년생인 것이 참작돼 손상을 입힌 자동차의 수리비 400달러를 변상하는 조건으로 행정규칙위반(Violation)급에 해당되는 풍기문란죄를 적용받고 재판은 끝이 났다. 유씨는 이에 따라 변상금 400달러를 지불하고, 그 증명을 가지고 법원에 출두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편지는 수취거절을 이유로 되돌아왔다. 앞집 남자가 수표를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 것이었다. 이 남자는 자동차의 손상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니 뭐니 해서 자그마치 10만 달러를 변상하라는 소송을 제기 한 것이다. 아무런 진전도 없이 재판은 수없이 연기됐다. 몇 번 법원에 출석했지만 번번이 무슨 이유로 연기되곤 했는데 도무지 무슨 절차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몇 달이 지나고 난 다음에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대방이 소송을 취하할 용의가 있으니 상대방에게 위로금조 5000달러와 그들의 변호사 선임에 따른 비용 3000달러, 합해서 8000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한다면 소송을 그만두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유씨는 기가 막혔다. 결국 남편의 성화 때문에 자신이 억울하지만 양보하게 됐다고 한탄하면서 모든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사건을 끝냈다. 돌이켜보니 이 일로 무려 일 년 동안이나 시달렸으며 금전적으로 2만 달러나 되는 돈이 달아났다. 뉴욕시내에서 최우수 학군에 속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 동네 집을 산 것이지만 이 사건 이후로 이제는 이 동네라면 정나미가 떨어졌다.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집 앞이라도 내 주차장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우는데 무려 2만 달러가 들어간 셈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7> 주류면허 위반한 포장마차 주인

플러싱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어는 날 소주를 팔다 단속 경찰에 적발됐다. 사업체는 합법이었지만 리커라이선스 없이 소주를 팔았다는 이유로 법원 소환 티켓을 발부 받은 것이다. 당시엔 소주에 대한 법적 구분이 불분명해 하드 리커라이선스 없이 소주를 팔다가 발각되면 주류통제법 위반으로 적발되곤 했다. 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 당장의 벌금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 주류 라이선스 발급 자격이 박탈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 판매업을 하는 업주들에겐 이러한 적발이 사업체 운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법원도 관련 규정이 너무 가혹하다고 여겨 특별히 심한 위반이 아니면 주류법 위반을 일반 풍기문란에 해당하는 규칙위반 정도의 협의로 낮춰 약간의 벌금형을 주는 것으로 선처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법원 출두일에 변호사와 법정에 출석한 최씨는 판사로부터 역시 이 같은 낮은 처분을 제의 받았다. 이를 받아들이고 재판을 끝냈더라면 기껏해야 벌금 100달러 정도에 해결 되었을 것이고, 주류법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주류 면허 신청을 하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의를 즉각 거절하고 공판에 들어가기를 주장해 재판 날짜는 연기됐다. 다시 법정에 나온 날, 이러한 사건은 원래 피의자와 판사가 사건을 심리하고 끝내는 경미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정식공판을 신청했기 때문에 담당 검사가 지정됐고, 검사는 사건조사가 필요하다며 다시 연기 요청을 하게 됐다. 이런 저런 사유로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담당 판사도 이 후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변호사를 이해할 수 없어 판사석 앞으로 불러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최씨의 변호사는 풍기문란 정도의 규칙위반이라도 앞으로 주류 라이선스를 받는데 지장이 있기에 피의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주장했고, 판사도 어쩔 수 없이 공판날짜를 또 연기했다. 다음 심리에서 판사는 규칙위반 혐의도 없애버리고 6개월 기한부 기각조건인 ACD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놀랍게도 이 제의조차 거절하는 것이었다. 난 최씨의 변호사에게 이 사건이 ACD로 끝나면 그야말로 무죄나 마찬가지이고, 주류 라이선스 신청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왜 받아들이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변호사의 답변은 당사자인 최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담당 검사 역시 이런 사소한 일로 수사를 할 형편이 아니어서 결국 기각시키고 말았다. 고집스레 오랜 싸움을 한 끝에 이기기는 한 셈이다. 그렇지만 최씨가 한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주류법 위반혐의로 일단 티켓을 받게 되면 법원에서 어떤 결정을 받았건 상관없이 모두 주류국의 청문회에 불려가게 돼 있다. 그러나 원래의 주류법 위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아닌 이상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나기 마련이다. 최씨는 청문회에 나가는 것을 주류국의 제재로 오인하고 있었고, 그의 변호사는 이런 내용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최씨의 말만 따른 것이다. 1년을 끌었으니 변호사 수임료가 얼마나 될까. 아마 최씨의 허리가 휠 정도일 것이다. 재판을 이기기는 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었더라면 그 많은 돈을 변호사 수임료로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6> 바람난 아내의 허무한 결말

벼룩시장에서 주말장사를 하는 정씨 부부는 지난 연말 새로 들여 온 물건마다 연속으로 히트를 쳐 꽤나 재미를 봤다. 특히 크리스마스 대목 때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잘되는 장사 때문에 피곤한 줄 모르고 정신 없이 뛰었다. 정씨는 추운 날씨에 열심히 도와준 아내가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 장사도 봄이 될 때까지는 쉬어도 되는 처지라서 아내에게 그토록 다녀오고 싶어했던 한국에 가서 좀 쉬고 오라고 권했다. 남편의 제안으로 정초에 한국에 나간 아내가 돌아온 것은 봄이 다 돼 다시 장터에 나갈 준비가 한창 바쁜 3월 중순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한국에서 온 뒤로 매일같이 늦잠을 자는가 하면 저녁에는 시차를 핑계 대며 새벽 한 두시가 되도록 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루는 부인이 옆방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 서랍에서 열 장도 넘는 한 묶음의 전화 콜링카드를 발견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장씨는 옆방에서 벌써 한 시간 이상을 전화에 매달려있는 아내의 대화에 귀 기울여 들어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자세히 들을 수 없었으나 필경 어느 남자와의 통화였다. 방으로 뛰어들어가 수화기를 뺏어 들었다. 아내가 한국에서 사귄 애인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들통 나버린 아내는 우선 겁부터 났고, 남편이 폭행을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의외로 너무 차분하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아내는 정말 겁이 나 그 길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내는 위기의 순간을 넘기기 위해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중전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짧은 영어로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던 아내는 대충 '남편이 때린다' '죽인다고 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고 있다' 등으로 얼버무렸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들이닥쳤고, 남편은 수갑을 찬 채 잡혀갔다. 폭행혐의와 학대혐의로 체포된 남편은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게 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건이 성립되려면 검찰이 고발인 즉, 아내로부터 진술서를 받아야 하는데 아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기에 검찰의 연락을 회피했다. 결국 재판은 계속 연기되다가 남편의 접근금지 명령만 유효한 채 마무리됐다. 한편 아내는 남편이 집에 없으니 자유로이 한국의 애인과 마음대로 전화할 수 있었고 누구도 방해할 사람도 없었다. 한국의 애인과는 더욱 자주 통화를 하며 가까워져 장래에 대한 은밀한 얘기까지 하게 됐다. 내친김에 남편과 이혼하고 한국의 애인 품으로 영원히 안기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남편이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아내는 겁이 덜컥 났지만 남편은 의외로 너무 차분한 말로 자신의 짐을 가지러 왔다고 말하고는 묵묵히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나가버렸다. 그제서야 남편이 멀리 떠났다고 느꼈다. 아내는 외롭고 복잡한 심경에 한국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당장 한국으로 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말을 하기 시작한 한국의 애인은 그녀의 한국행을 거부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고 한국의 애인과 함께 살 계획이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며칠 후 남편의 변호사로부터 이혼서류에 서명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5> 술 취한 대학생

어학연수로 이곳에 와 있는 대학생 정모씨. 퀸즈의 모식당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정씨는 어느날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됐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직장에서의 어려운 이야기며 지난 이야기들을 하며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새벽 3시쯤에서야 친구와 헤어진 정씨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 히스패닉 괴한들로부터 강도를 당하고 말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폭행을 당하고 소지하고 있던 지갑도 털렸다.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이 그냥 두들겨 맞았는데, 그 과정에서 옆에 있던 어느 집 현관문과 심하게 부딪쳤다. 충격 때문에 현관문의 큰 유리가 깨졌고, 유리 깨지는 소리에 괴한들은 도망쳤다. 다음날 정씨는 깊은 잠에서 눈을 떴으나 어디가 어딘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누구의 집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남의 집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것을 알았다. 술이 취한 데다 뭇매까지 맞아서 온몸이 아스러질 것같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룸메이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려고 집 주소를 알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친구에게 번지수를 알려주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치는 게 아닌가? 경찰이었다.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왜 체포되는지 영문을 물어볼 기력도 없었다. 알고보니 이 집은 여자 혼자 살고 있는 집이었고, 주인이 2층에서 잠을 자느라 전날 저녁에 유리가 깨진 것은 몰랐던 모양이다. 아침에 청년이 전화를 거는 소리를 듣고서야 침입자가 있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체포된 청년은 중범에 해당되는 기물파손ㆍ가택침입ㆍ절도미수ㆍ강간미수 등 여러 혐의로 입건됐다. 검찰은 다른 죄목들은 취하해주는 조건으로 중범죄인 가택침입죄 한 가지만 유죄를 인정하면 실형언도 없이 5년간의 보호관찰형을 구형하겠다고 제의해왔다. 정씨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사는 검사의 제의가 파격적이라며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종용했지만 정씨는 피해자는 자신인데 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해야 하느냐며 거부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선 변호사 모두 정씨가 술에 취해 강도 피해를 당했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남의 집에서 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인 정서상 아무리 술에 취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처음 배정됐던 국선 변호사는 정씨가 협조하지 않는다며 정씨 사건을 포기했고, 다른 국선 변호사가 다시 배정됐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끝내 정씨는 대배심 심리를 거쳐 중범죄로 기소돼 상급 법원으로 이송됐다. 이런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정씨에게 통역관인 내가 사건의 심각성을 설명해주고, 한인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 정씨는 한국의 가족에게 연락해 비용을 받아 한인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 변호사는 검찰을 끈질기게 찾아가 상황을 이해시켰다. 이 사건은 무려 1년이나 더 걸렸지만 다행히 경범죄로 감형돼 실형 없이 재판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재판으로 지쳐버린 이 청년은 어학연수고 뭐고 재판이 끝나기 무섭게 한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술로 인한 실수에 비교적 관대한 한국 같으면 별일 아닐 일이 미국에서는 심각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4> 위험한 공판

잡화상을 운영하는 30대 청년 윤모씨는 소상인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60대의 한인 여인과 계를 같이하게 됐다. 꽤 오랫동안 돈 거래를 해 온 사이여서 자주 만나는 처지였다. 하루는 빌린 돈 문제로 약간의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날따라 이 아주머니는 아주 거칠게 윤씨를 밀어붙이며 대들었다. 나이 든 여인이라 같이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기에 이러 저리 피하고만 있었는데 흥분한 여인이 너무 심하게 덤비다가 제 힘에 못이겨 땅바닥에 넘어졌다. 도대체 말로 타협이 될 것 같지 않아 윤씨는 자리를 피해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윤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했다. 경찰이 땅에 넘어지면서 생긴 멍자국이며 몇 군데의 긁힌 자국의 사진도 찍었다. 그래서 윤씨는 경찰에 입건되고 말았다. 윤씨는 변호사인 친구에게 이 같은 사실을 호소하며 변호를 의뢰했다. 또 다른 친구를 통해 이 여인이 사실 다른 일로 넘어진 일이 있어 다리에 멍이 들었다는 말도 들었다. 대부분 이런 정도의 사건은 전과가 없는 사람이면 형사범죄가 아닌 괴롭힘(Harassment) 정도로 처리된다. 검찰은 윤씨에게도 같은 제시를 했다. 이를 받아들였으면 그것으로 사건이 끝나 일 년 내에 다시 사건에 연루되지 않으면 처벌은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윤씨는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또 그 멍든 자국에 관한 다른 친구의 증언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할 것이라 믿었다. 변호사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검찰의 제시를 거절하고 정식공판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 사건에서 검사가 협상조건으로 내놓은 제안(구형)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배심원 재판으로 또는 판사 단독재판 공판(trial)에 붙여 유ㆍ무죄를 판단하도록 하는 것은 제법 위험부담이 따른다. 왜냐하면 공판에 붙여지면 검찰 측은 혐의사항 중에 가장 죄질이 높은 혐의를 가지고 공판에 임하게 되고 또 결과가 유죄로 판결될 때는 당초 검사 측에서 제안했던 구형보다 훨씬 더 무거운 죄목과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시한 사건이라도 형량협상(Plea Bargaining)에 합의하지 못하고 공판까지 가는 경우에는 역시 위험이 따른다. 검찰은 이제 위반급의 괴롭힘 혐의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혐의인 폭행혐의로 재판을 하게 된다. 그러니 만약 유죄로 판결되는 경우에는 형사범죄인 폭행혐의에 의거해서 선고를 받게 된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윤씨는 친구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공판을 계속했다. 피해자인 여인이 법원에 나와 증언했고 늙은이가 젊은 청년에게 모욕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하면서 서럽게 통곡하며 울기까지 했다. 한편 여인이 다른 곳에서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친구의 증언은 변호사의 서툰 질문 때문에 번번이 검찰의 이의제기에 걸려 증언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며 윤씨가 생각했던 유리한 증언은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친구의 증언은 자신이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한 한인 택시운전사가 들은 이야기를 이 친구에게 들려준 간접적인 것이어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윤씨는 폭행혐의로 유죄선고가 내려졌고 30일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자신의 무고를 입증할 수 있다며 끝까지 버티다 결국 손해만 보게 된 것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3> 1급 강도혐의 소년들

사춘기 자녀들의 사소한 범죄로 재판까지 오게 된 어느 한인 부모들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되짚어 보기 위해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17살의 고등학생 둘이서 힘이 약한 아이들을 협박해 주머니 돈을 빼앗다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뜯은 돈이라야 고작 네 번에 걸쳐 40여 달러 밖에 안 되는 경미한 사건이었다. 이들에게 적은 돈이나마 뜯긴 피해자들은 모두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고 계속되는 피해신고를 받은 경찰이 형사를 잠복시켜 이들을 체포하게 된 것이다. 적은 액수에 불과하지만 법적으로는 당연히 강도죄를 저지른 것이므로 상습강도 4건 혐의로 중범재판 법정으로 사건이 배당됐다. 첫 번째 법원에 나오는 날이었다. 변호사는 법정 바깥에서 그들의 부모에게 오늘의 재판내용을 설명해줬다. 검찰 측에서 사건 중 한 건에 대해서만 유죄를 시인하면 실형을 요구하지 않고 5년간의 보호관찰형으로 해주겠다는 제안도 설명했다. 배심 심리까지 가서 최악의 경우 4건의 강도혐의 모두 유죄로 판결 받게 되면 처벌은 7년이 넘는 장기징역의 가능성이 있으며, 피해 금액이 적더라도 일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므로 배심 심리까지 가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조언했다. 그러나 말을 듣고 있던 한 아이의 아버지는 분노가 터지기라도 한 듯 얼굴을 붉히며 "그까짓 돈 40달러 뺏을 것을 강도라고 하다니, 그거야 아이들이 좀 심한 장난을 한 것 밖에 더 되느냐. 한국 같으면 파출소에서 좀 야단이나 맞고 훈방되는 일을 가지고 강도니 7년 징역이니 하는 변호사가 어디 있나"라며 펄쩍 뛰는 것이었다. 한 쪽에서 묵묵히 이 광경을 보고만 있던 다른 소년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우선 자신의 아들이 이런 끔찍한 죄명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서 있던 당사자인 소년들은 아무런 죄책감 같은 것도 느끼지 않는 듯이 둘이서 히죽히죽거리고 있었다. 같은 무렵, 20살의 친구 사이인 두 젊은이가 공원에 앉아있는 소년의 목걸이를 빼앗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정에서 똑같이 강도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는데 한 친구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은 그때 다른 친구의 행위를 말렸다며 강도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고 변호사에게 설명했다. 이 때 실제 목걸이를 가로챈 청년의 아버지가 말을 가로막고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며 자신의 아들을 불러 "현장에서 둘이 같이 있었으면 당연히 똑같이 한 짓인데 왜 너만 그 책임을 다 지고 징역을 가야 하느냐, 징역을 가게 되면 당연히 둘이 같이 가야 옳다"고 다짐시키며 우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마치 자기 아들 몫의 죄가 덜어지기라도 하는 듯이 둘이서 같이 한 짓이라고 말하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 아버지의 물귀신식 주장이 주효해 두 청년은 검찰과 형량협상에 합의하고 둘 다 똑같이 3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몇 해가 지났다. 그때 물귀신 아버지를 둔 청년은 또 일을 저질러 법정에서 만났다. 다른 청년의 안부를 물어봤다.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고 했다. 자라는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를 흉내 내는 것으로 인생을 배운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인지는 명백해진다. 가정은 자라는 이들의 인생을 가르치는 학교다. 가정을 일류학교로 만드는 것은 부모들이 책임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2>정신질환 병력의 억울함

한국에서 정신질환으로 여러 번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고 뉴욕에서도 두어 번 입원한 적이 있는 오모씨. 오씨는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몸싸움이 벌어졌고, 아내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는데, 이 정신병력 때문에 재판이 완료될 때까지 수감돼 있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오씨의 아들은 고교생이었는데,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는 것에만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부부 사이도 평탄하지 못해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아들은 늘 엄마 편만 들어 오씨는 불만이 많았다. 오늘따라 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보니 아들은 여전히 집에 없었고 밤 12시나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오씨는 밥을 챙겨먹기 위해 부엌에 있던 아들에게 늦게 돌아다닌다고 나무라면서 프라이팬으로 아들의 등을 몇 번 때렸다. 이에 아들은 거세게 반항했고, 부인까지 합세해 자신을 몰아세웠다. 오씨는 정기적으로 정신질환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아들과 마찰을 겪을 당시엔 무심코 며칠 동안 약을 먹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성격이 격해지는 증상을 보이곤 했다. 따라서 아들과 언쟁을 벌일 때 성질이 격해지고 말았다. 언성이 높아지고 아들과 엎치락 뒤치락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부인이 신고한 것이다. 오씨는 결국 폭행혐의로 입건됐고, 유치장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정신질환 증세가 나타나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이 난동을 보고받은 법원은 당연히 정신질환 피고인이라 의심하고 정신감정 명령을 내렸다. 이 때부터 오씨의 끝없는 감방 여정이 시작됐다. 열흘이 넘게 걸린 정신감정에서도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자 의사는 재감정 신청을 했고 계속된 심리 끝에 사건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의사의 감정결과가 나왔다. 검찰도 오씨가 사회에 나가게 될 경우 그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 오씨를 뉴욕주 북쪽 한적한 곳에 있는 형무소나 다름없는 정신병동에 정해진 기한도 없이 유치시켰다. 그 후 오씨는 약을 계속해서 복용해 정상인 상태로 돌아왔지만 재판부는 이를 정상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6개월이 흘렀다. 오씨는 다시 법원으로 보내져 또 다른 의사와 상담을 했지만 검사는 오씨의 정신상태가 위험성이 있으므로 계속해 감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씨의 변호사는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이유로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결론적으로 아들을 폭행했다는 사건 자체는 오씨의 당시 정신 상태가 정상인이 아니었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져 기각됐다. 그러나 검사 측 의사의 주장은 계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므로 석방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이런 식으로 오씨의 변호인 측과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다 결국 오씨만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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